실생활 활동이 놀이가 되는 저와 저희 아이들의 경험을 적어보려합니다.
거실 가득 흩어진 장난감들.
자동차, 인형, 퍼즐, 블록까지 다 꺼내놓고는
정작 아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소파에 올라가 있던 어느 날.
저는 무심코 주방에서 국자를 들고 있었고,
옆에 떨어져 있던 플라스틱 컵과 몇 개의 종이 빨대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뭔가에 이끌리듯
아이 앞에 그것들을 톡, 하고 놓아보았죠.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아이의 눈이 반짝 빛나더니,
국자를 쥐고 컵에 빨대를 하나하나 담기 시작한 거예요.
쏙쏙 들어가는 빨대에 집중하는 모습,
넘치면 다시 빼고, 색깔을 나누어 정리하기까지…
아무 기능도, 소리도 없는 빨대와 국자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난감이 되었던 순간.
저는 그날 처음으로,
‘실생활 활동’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 놀이가 아닌, 진짜 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
우리는 아이가 잘 놀도록 하기 위해
좋은 장난감을 사주고,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게 하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진짜 몰입하고 즐거워하는 순간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아주 단순하고 일상적인 활동일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엄마가 국을 뜨는 모습을 따라 하려고 국자 달라고 할 때
청소기 돌릴 때 자기도 미니 청소기로 옆에서 따라 할 때
빨래 널 때 집게를 쥐고 옷에 끼워보려고 할 때
이런 장면들은 우리에게 ‘귀엽다’로 지나가는 순간일 수 있지만,
아이에겐 진짜 세상을 배워가는 진지한 시간이에요.
🔸 몬테소리 철학에서 말하는 ‘실생활 활동’의 가치
몬테소리 교육에서는 ‘실생활 활동(Practical Life)’을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영역으로 봅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건 ‘어른처럼’ 살아보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아이에게는 커다란 장난감보다,
주방 수세미나 밀가루 체가 훨씬 더 매력적일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것들이 실제로 엄마 아빠가 사용하는 진짜 도구이기 때문이죠.
실생활 활동은 다음과 같은 힘을 길러줍니다.
집중력
소근육 발달
순서대로 하기
책임감
성취감
무엇보다도, 아이는
“나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라는 소속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건 어떤 놀이도 줄 수 없는 감정이에요.
🔸 빨대와 국자가 빚어낸 ‘몰입’의 순간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볼게요.
빨대를 컵에 옮기던 아이는 어느새 국자를 반대로 들고,
작은 구멍에 끼워넣기 놀이를 하기 시작했어요.
색깔별로 나눠보기,
길이 순서대로 정렬해보기,
컵을 여러 개 두고 빨대 나누기까지…
그 어떤 설명도, 기능도 없는 도구로
아이 혼자 놀이를 창조하고 있었어요.
이 순간을 지켜보며, 저는 결심했어요.
아이가 필요로 하는 건 ‘더 좋은 장난감’이 아니라
‘더 진짜 같은 일상’이라는 걸요.
🔸 실생활 활동을 놀이로 바꾸는 작은 팁
몬테소리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우리 집에서 당장 해볼 수 있는 몇 가지를 소개할게요:
국자 + 말랑한 재료
: 마른 콩, 펜네 파스타, 물을 담은 컵 등
: 퍼서 담기, 옮기기 놀이 가능
수세미 + 물놀이 바구니
: 작은 그릇 닦기 놀이로 연결 (실제 설거지 흉내)
분무기 + 걸레 or 키친타월
: 창문 닦기 놀이. 진짜 물청소로 이어지기도 해요
미니빨래 + 집게
: 손수건을 빨고 널기, 집게로 고정해보기
가위 + 종이 스트립
: 종이를 자르고 접어보는 활동
이 모든 것들은
단돈 0원,
우리 집 안에서 가능한 ‘진짜 놀이’입니다.
🔸 장난감보다 더 깊은 만족감
아이에게 장난감을 줬을 때는 5분 만에 흥미를 잃었는데,
수세미 하나를 줬더니 30분 동안 혼자 놀았던 날이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며 저는 마음이 이상하게 따뜻했어요.
왜냐하면
아이의 그 집중력과 즐거움이 만들어진 자극이 아니라, 내면에서 나온 에너지였기 때문이에요.
그 이후 저는 장난감을 사는 횟수는 줄이고,
실생활 도구를 ‘아이의 손에 맞게’ 준비하는 데 시간을 쓰기 시작했어요.
아이도 느낍니다.
엄마 아빠가 나를 진짜 구성원으로 대해주고 있다는 것.
놀이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마무리하며,,,
빨대와 국자가
세상에서 가장 빛났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제 육아 일기장 한 페이지에 남아 있어요.
그리고 저는 여전히,
장난감보다 빛나는 ‘생활의 도구들’을 아이의 세계에 조금씩 선물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놀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은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그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 아이가 만질 수 있는 ‘진짜 세상’은 무엇이었나요?
그 속에 놀이보다 더 깊은 성장과 기쁨이 숨어 있을지도 몰라요. 🌱